2017년 6월 14일 수요일

죽음


할머니 상을 치르던 날. 공동묘지 부지에 수많은 무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걸려 있는 현수막에는 더 이상 공동묘지에 부지가 남지 않았으니 관리비를 내지 않은 묘의 경우 이장을 하겠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죽음이란 무엇이기에 인간들은 이리도 땅에 묻히려고 했을까. 이 또한 본인도 모르게 주어진 가치는 아니었을까.

한국사를 공부하면서 인상깊었던 점 중 하나가 장례 문화는 굉장히 보수적이라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만큼 인간이 죽음을 무겁게 인지한다는 뜻이다. 그러한 보수적 인식이 이렇게 많은 무덤을 양산해 냈고, 그 무덤의 규모가 할머니의 죽음을 보잘것 없게 느끼게 했다.

인간은 인지하고 행동하고 받아들이고 내뱉는다. 인간의 움직임, 말투, 행동이 그 인간을 형성한다. 그 움직임과 행동은 뇌가 결정한다. 뇌는 단백질 덩어리이며 여러 신경세포가 다발을 이루어 전기 신호를 주고 받는 기관이다. 우리가 새로운 것을 보고 맛보면 이 신경 다발이 새로운 자극을 주고, 우리의 뇌는 그에 맞춰 변한다. 그렇게 '경험' 이 쌓여 가는 것이다.

컴퓨터 전원을 내리면 컴퓨터의 연산활동이 하늘 나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도체에 전기가 흐르지 않는 자연 상태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구리, 플라스틱, 금 등의 물질로 구성된 물체 그 자체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죽으면 하늘 나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신경 다발에 전기 신호가 더 이상 흐르지 않는 것이다. 단백질 세포로 구성된, 전기 신호가 흐르던 뇌는 산소와 영양분 공급이 중단되어 그저 썩어가는 단백질 덩어리가 되는 것이다. 죽음이란 그저 그런 것이며 그만큼 허망하다.

죽으면 혼이 되어 하늘 나라로 올라가는 것도, 천국과 지옥의 세계로 빠지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근거는 없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근거도 없다. 다만 너무나 인간적인 발상이기에 인간의 상상으로 비롯되었음은 확고하게 주장할 수 있다.

우리의 죽음이 이렇게나 허망하기 때문에 현재의 삶에 너무나 많은 이유를 부여하며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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