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23일 금요일

Daily Painting 6/23


임의의 단어를 골라 그리는 daily painting. 오늘의 단어는 핸드폰.
나의 핸드폰 철학은 뚜렷하다.
- 저렴할 것
- 작고 가벼울 것
- 핸드폰 외의 악세서리를 줄줄이 달고 다니지 않을 것

채색 : 앙데가르트

충격의 크기

누구나 떨어져야 하는 탑에서는 높이 올라갈 수록 충격이 커진다. 높이 올라갈 수록 더 멀리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지만 떨어짐을 피해갈 수 없다면 차라리 낮은 곳에서 떨어지는 것이 충격이 더 적을 수도 있다.

2017년 6월 22일 목요일

Daily Painting 6/22

임의의 단어를 골라 그리는 daily painting. 오늘의 주제는 신경.

나는 예민한 편이다. 신경질 적이기도 하다.
예민하게 산다는 건 피곤한 일이다.

2017년 6월 21일 수요일

Daily Painting 6/21


임의의 한 단어를 책에서 골라 그리는 daily painting. 오늘의 단어는 파트너.

파트너라 함은
1. 같은 길을 함께 걸으며
2. 대화 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깝고
3. 둘 사이에 산들 바람이 불 정도로 거리가 있으며
4. 다른 곳을 바라볼 수 있으나
5.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는 사이가 아닐까

2017년 6월 19일 월요일

Daily Painting 6/19

책의 아무 단어나 골라서 그리는 daily painting. 오늘의 단어는 부류.

어제 영화 갱스 오브 뉴욕 영화를 보았다. 토착민들과 이주민간의 갈등이 이슈였다. 그들을 응집시키는 배경은 무엇일까. 이익? 문화? 핏줄?

웃음

오는 길에 싱긋싱긋 웃으며 걷는 여성을 보았다. 예쁜 얼굴은 아니었지만 나도 모르게 같이 웃음이 나왔다. 웃음이 좋다.

늘 혼자 다니던 여성이 있었다. 굉장히 박색이었는데 늘 혼자 다니는 듯 했다. 어느 날 그녀가 어떤 남성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았다.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천생연분일까. 천생연분이라는 것이 존재는 할까. 만일 이 여성 주변에 남성이 많았다면, 외적으로 더 멋진 남자가 그녀에게 접근을 했다 해도 이 남성과 사랑을 속삭였을까. 지금의 사랑은 얼마나 진실될까. 남자에게도 그러할까.

2017년 6월 18일 일요일

Daily Painting 6/18

책의 아무 단어나 임의로 골라 그림을 그리는 daily painting.
오늘의 주제 : 서른

2017년 6월 17일 토요일

행복의 가치

사람은 기본적인 욕구를 채워야 한다. 배고픔, 잠, 섹스. 그리고 이러한 욕구들이 채워지면 다른 욕구들을 채우고자 한다. 누군가에게는 예술로서, 누군가에게는 사회적 활동으로서 채워질 것이다. 그 사람의 몸과 머리가 욕구하는 것을 채우려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 욕구가 채워지면 행복해 질 것이다. 인간은 결국 행복을 향해 움직일 것이다. 잘 때의 작은 뒤척임, 시원하게 방귀를 뀌는 일, 남아있는 빵 조각을 주워 먹는 일마저도 작은 욕구를 충족하는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방향성에는 문제가 없을까. 행복을 향한 방향이라면 모든 것이 괜찮은 것일까. 이에 반하는 것들은 뭐가 있을까.

절대적인 가치가 있는가

오늘도 게임을 한다. 가상 세계의 자원을 캐고 만든다. 가끔은 상대와 지략 대결을 한다. 때로는 좋은 아이템을 얻기 위해 열심히 몬스터를 잡는다. 결국 얻어지는 것들은 가상의 자원, 가상의 승리. 인생을 살아가는 관점에서 이러한 일련의 행동들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재미는 있으나 무엇이 남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남는 것이 없는 행동은 무의미할까.

바둑은 유의미할까. 바둑판 안에서의 승부일 뿐 우리가 살아가는데 어떤 영향을 끼치는 것일까. 축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축구 선수들은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고 사람들의 큰 꿈 중 하나가 되기도 한다. 이것들은 게임과 무엇이 다를까. 사람들이 많이 좋아해주거나 돈이 많이 벌린다면 그때 의미가 생기는 것일까.

작곡, 글쓰기, 음악감상, 영화감상과 같은 문화 생활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내가 즐거우면 되는 것일까. 사회적 혹은 개인적으로 살아가는데 묵직한 담론이 담겨 있다면 유의미할까.

가난

가난이란 무엇일까. 나는 부유하게 자라지는 못했으나 부족함 없이 자랐다. 그래서 가난의 아픔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누군가는 가난에 힘들어하고 그 아픔에 억척같이 살아가기도 한다. 가난이 강한 모티브가 되는 것이다.

가난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 해결책은 무엇일까. 가난을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난 그저 운이 좋은 사람인 것인가.

돈 버는 방법

광산 옆에 태어난 아이는 광부가 된다. 바닷가에 태어난 아이는 어부가 된다. 축구 선수를 꿈꾸다 좌절된 아이는 집 안에서 백수로 산다. 인터넷이 가능한 나라에서 태어났기에 프로 스트리머가 되기도 하고 문명과 단절되었기에 사냥을 하고 살 수도 있다. 돈벌이라는 것은 수요와 공급의 원리로 만들어 지는데 사람은 모든 수요와 공급의 흐름을 파악할 수 없다. 아마존 원주민이 프로 스트리머가 되기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돈벌이라는건 본인이 스스로 노력해서 찾아내야 할 것이고, 이는 쉽지 않을 것이다. 수요는 창출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세상 곳곳의 다양한 수요와 공급을 파악하는 방법이 있을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쏙쏙 골라서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찔끔찔끔 벌며 사는 삶

놀고 싶을 때 놀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하는 삶. "오늘 통장 잔고가 얼마 없으니 내일 모레 돈 벌어와야지. 그럼 다음 일주일도 즐겁게 살 수 있을거야." 라고 말하며 사는 삶이 가능할까.

적어도 농사는 불가능 할 것이다.

경쟁과 노력

평등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온전히 노력에 의해 결과가 바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자유경쟁의 체제 속에서 목숨을 걸고 노력하면서 서로의 살을 깎아먹으며 살까. 누군가는 열심히 하고 싶을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힘들게 노력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힘들게 노력하지 않는 자들은 그 만큼의 결과만을 가지고도 잘 살 수 있는 사회일까.

winner takes it all 이라는 말이 있듯, 스포츠 세계에서는 1,2,3 등만을 뽑곤 한다. 다시말해 그 아래에는 의미를 두지 않는다. 스포츠 세계에서는 죽도록 노력해야만 의미가 생기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느낌으로 만들어지는 가치

인간은 논리적 사고가 가능하지만 그를 지지하는 배경 지식이 없다면 엉뚱하게 사고하게 된다. 말 그대로 '느낌' 으로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느낌이라는 녀석은 너무나 모호하고 불분명하다.

공복이 되면 머리가 맑아진다. 레몬 물을 마시면 시원하고 상큼한 느낌이 내 몸을 깨워주는 느낌이 든다. 디톡스 라는 요법이 생긴다. 그저 공복에 레몬물을 마시는 것인데 이것이 어느새 독소를 제거하는 요법이 되었다. 어느새 몸에는 기본적으로 독소가 쌓여 있게 되었다.

시원한 물을 마시니 정신이 맑아지고 갈증이 빨리 해소되는 것 같다. 몸에 흡수가 잘되는 육각수가 생긴다.

이런 저런 공부를 할수록 모든 가치에 근거를 찾게 된다. 맹목적인 믿음은 멀리하게 된다. 반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믿으며 사는지 알게된다.

하고싶은 일

"할 수는 있는데 하고 싶지 않아"
"그 좋은 기회를 왜 발로 차버려?"

남들이 부러워하는 일자리에 있다면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비정상일까.
돈을 많이 버는 군인이라면 즐겁게 일을 할까.
돈을 적게 버는 작가라면 일이 하기 싫을까.

2017년 6월 16일 금요일

가난했다면

고민을 한다. 사는게 무엇일까 왜 살아야 할까. 왜 이 일을 하고 살아야 할까. 그러면 이런 얘기를 듣는다.

"너가 부족함 없이 자라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거야."

매 끼니를 걱정하며 살았다면 단지 어떻게 먹을지를 고민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더 불행했을까?

한국에서 공부한다는 것

문제집을 산다. 개념은 훑고 바로 문제를 푼다. 오답정리를 하고 다시 문제를 푼다. 사고는 필요없다 질문은 불필요하다.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단순하고 정해져 있다. 오래 앉아 그저 열심히 반복하면 문제를 푸는 방법이 몸에 익는다. 생활의 달인에 나오는 주인공과 같다. 감으로만 반죽을 뚝 떼어도 오차범위 1g 내에 뜯어내는 것과 같다. 문제만 봐도 풀어야 하는 방식이 눈에 들어온다. 반복과 반복을 통해 풀어내는 문제집은 5권에 달한다. 문제집이 어서 내가 틀릴 문제를 찾아줬으면 좋겠다. 학교 선생님들은 어떻게든 새로운 형태의 문제를 찾아내어 시험 문제로 낸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문제는 내가 틀릴 가능성이 있는 문제이다. 100점이 아니라면 한참 뒤로 밀릴 수 밖에 없기에 오늘도 내일도 완벽에 완벽을 기하고자 반복 그리고 반복한다.

친구들이 토론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냉소적이 된다. 이런 토론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그들이 하는 얘기가 궁금하지 않다. 정답은 따로 있을테니 쓸데없이 시간낭비하지 말았으면 한다. 손을 들고 질문하는 친구의 모습이 역겹다. 점수를 받으려고 저러는건가? 이게 정말 궁금할리는 만무하다. 문제집을 풀면 나오는 내용, 자습서에 다 나와 있는 내용인데 뭐가 더 궁금하다는걸까. 멍청한 친구들을 보면 절로 한심이 나올 뿐이다.

혼란스러워진다. 대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은 문제집이 별로 없다. 자습서도 없다. 학원도 없다. 교과서에는 글이 너무 많고 문제는 별로 없다. 학교 수업의 달인이 되기 위해서는 이전처럼 반복학습이 필요하다. 교과서를 읽는 시간은 너무 괴롭다. 이러저러한 쓸데없는 미사여구 없이 문제에 대한 답을 어떻게 내는지 속 시원하게 보여주는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 대학교 수업 내용은 쓸데없이 복잡하고 시험 문제는 지저분하다. 수업 내용 따위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으니 집에 가서 영화나 한편 보고싶다.

대한민국에서 영재로 산다는 것

엄마는 불안하다. 아이의 재능이 꽃피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이 모든게 자신의 잘못은 아닐까. 내 아이가 악기 하나쯤은 할 줄 알고 운동 하나쯤은 제대로 할 줄 알고 적어도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정도는 되어야 한다. 학교 성적은 당연히 잘 받는 것이고 공부 잘하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더 잘하는 아이가 되었으면 한다. 옆집 아이는 밤 11시 까지 학원을 다닌다는데 우리 아이는 12시 까지 보내 놓는게 낫지 않을까. A 학원보다는 B 학원이 더 유명하다던데 옮기는게 낫지 않을까. 수요일에는 학원이 하나밖에 없어 저녁 시간이 비는데 과외를 시켜서 부족한 영어 실력을 보완해야 하지 않을까. 이번에 친구보다 성적이 더 떨어졌는데 1주일 컴퓨터 게임 시간을 30분으로 줄여야 하지 않을까. 매주 나가는 엄마들 모임에 나갈때마다 엄마는 입시정보와 학원정보, 그리고 주변 아이들의 활약상에 마음이 초조하다.

아빠는 아이가 안쓰럽다. 억척스럽게 공부시키는 아내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심한 것 같다. 우리 아이가 똑똑하지만 같이 놀러도 가고 싶고 공도 차러 가고 싶다. 이런 것들도 제대로 못하게 하는 아내가 서운하다. 이런 아내 모습이 이상해 종종 싸우긴 하지만 그래도 아내의 뜻은 존중한다. 100점 짜리 시험지를 받아오는 아이를 보면 기특하기 때문이다. 아빠는 오늘도 묵묵히 돈을 벌러 나간다. 우리 똑똑한 아이가 공부를 하는데 돈이 더 필요하기 때문에 오늘도 쉴 수 없다.

아이는 삶이 무기력하다. 학교 다녀오면 학원을 간다. 학원을 다녀오면 잘 시간이다. 하루가 무의미하고 허망하다. 내일 일어나면 또 학교 학원을 가야 하기에 잠들 수 없다.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는다. 다음날 아침이면 쏟아지는 잠을 참을 수 없다. 학교에 가서 빨리 자고싶다. 배움에 대한 호기심은 없어진지 오래다. 학교 수업은 유치하고 학원 수업은 지친다. 오늘도 학원에서는 쪽지시험과 몽둥이 찜질이 기다리고 있다. 매일매일 하루가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린다. 아이는 빨리 대학교에 가서 신나게 놀고 싶다.

가난한 A 부유한 B

A 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화가가 꿈이다.
B 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도 화가가 꿈이다.

A 는 어렸을 적 길바닥에 돌로 낙서를 하곤 했다.
B 는 36색 독일제 색연필로 낙서를 했다.

A 의 부모는 A 가 성적이 낮으면 매질을 했다.
B 의 부모는 B 가 행복하다면 괜찮았다. 착하고 건강하게 자라길 바랬다.

A 는 학교 수업 중에 삼색 볼펜으로 그릴 수 있는 다양한 표현을 연습할 수 있었다.
B 는 마음껏 유화도 그려보고 수채화도 그려봤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스테인드 글라스를 이용한 작품도 시도해 보았다.

A 는 수능을 치고 인서울 대학교의 화학공학과에 입학했다.
B 는 마드리드 대학교에서 가우디의 작품을 직접 느끼며 공부하기로 했다.

A 는 공부를 하면서도 틈틈히 그림을 그렸다.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물감과 스케치북을 구입했다.
B 는 스페인 친구들과 어울려 신나게 놀고 파티도 즐겼다.

A 는 잘 사는 B 가 스페인에서 신나게 살고 있는 모습을 sns 에서 볼 수 있었다.
B 는 스페인 친구들과 와인을 마시며 서로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대화를 나누었다.

A 는 B 같은 친구들이 부족함 없이 자랐기 때문에 간절함이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본인이 이 악물고 열심히 노력하면 B 보다 더 훌륭한 화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B 는 평생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며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A 는 화가가 되기 위해 다양한 작품을 그려 갤러리에 제시했지만 아무도 그의 그림을 신경쓰지 않았다. 그들은 A 의 그림이 뻔하다고 생각했다.
B 는 본인이 살면서 겪었던 다양한 경험들을 기반으로 마음 가는대로 붓질을 해 보았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스페인의 것도, 한국의 것도 아닌 새로운 유형의 작품이었다.

A 는 결국 화학 회사에 입사하였고 직장인으로서 남은 여생을 살았다. A 는 출퇴근 시간이 지켜지는 삶을 늘 꿈꾸었다.
B 의 작품이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였지만 자그마한 전시회 정도는 열 수 있는 수준이었다. 특히 그의 풍부한 경험이 녹아있는 작품은 제법 좋은 평을 얻기도 하였다.

A 는 남은 노년에 대비하여 적금과 보험을 들었고, 나이가 들면 그 돈을 가지고 살아가기로 한다.
B 는 노년에 대한 별 생각이 없다.

2017년 6월 15일 목요일

수요와 공급

살아가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 고로 돈이 많으면 인생이 굉장히 자유로워 질 것이다. 다들 돈을 벌고자 그리 고생하는 것일테니. 혹자들은 돈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에게 일 자체가 소중하다고 하는데, 난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세상에 정해진 답은 없다.

일자리는 나의 의지나 취미, 성향에 맞게 주어지지 않는다. 이는 철저히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맞춰 제공된다. 수요는 인간이 소비하는 행위에서 창출되며 공급은 인간이 욕망하는 행위에서 창출된다. 이 두 개가 맞아 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수요와 공급의 논리는 인간적인 프레임이 아니다.

사진기

고등학교 시절 다른 학교를 다니던 친구가 나에게 카메라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자기 친구가 카메라 덕후인데 비싼 카메라를 사용하고 있다고. 사진도 보통 사진과는 완전히 다르다며 카메라에 대한 썰을 푸는 것이었다. 카메라에 대해 잘 모르던 나는 얼마전에 엄마가 새로 샀던 30만원짜리 똑딱이를 얘기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친구가 나에게 물어봤다.

"그 사진기로 뭐 찍어?"
"엄마가 나 자는 웃긴 모습 찍곤 해"
"? 그건 쓸데없는 사진이잖아"

광부

인생은 채광이 아닌가 싶다. 매일같이 일을 하는 것이 마치 곡괭이로 땅을 파는 것과 비슷하다. 어떤 날은 채광이 잘 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안되기도 한다. 하기 싫다고 하지 않으면 저절로 채광되지 않는다. 아무리 하기 싫어도 조금씩 해 놓으면 진전이 있고, 어떤 날은 신명나서 많이 파게 된다. 채광의 성과는 나의 의지가 아니다. 내가 판 땅에 보석이 많으면 수득이 좋은 것이고, 없는 땅이었다면 수득이 없다.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생닭

슈퍼에 가서 포장된 생닭을 살때마다 오래된 닭인지 아닌지 만져보곤 한다. 보통 포장된 생닭은 가슴이 하늘을 향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만져볼 때마다 닭의 가슴팍을 만지게 된다. 닭의 갈비뼈와 이를 감싸는 가슴살의 탄력으로 신선함을 가늠하는 것이다.

포장된 생닭을 만지면 놀랍게도 강아지의 갈비뼈와 닮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 터치에서 먹는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 우리 강아지를 잡아 냉장했다면 나는 그 고기를 먹을 수 있었을까.

물고 뜯고 씹는 즐거움

강아지를 키우다 보면 이 녀석이 참 물고 뜯는걸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필시 짐승이기에 본능적인 행동에 끌리기 마련이라지만 같이 살다보면 더욱 절절히 느끼게 된다. 이 녀석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양말이나 헝겊조가리에 지나지 않지만 이것을 물고 우리와 밀고 당기고 던져서 물어오고 하는 과정을 무척이나 즐긴다. 이토록 단순한 과정을 즐기는게 선뜻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 과정이 우리와 교감한다고 느끼기 때문인가 싶다.

이 녀석을 죽 관찰해보니 평소에 욕구 불만인 것 처럼 보이다가도 신나게 물고 당기고 나면 눈이 반짝반짝해진다. 곤히 낮잠도 자고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필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과정이 물고 당기는 과정 안에 있는것 같았다.

강아지를 키워서 느낀 것인지 본능적인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나 또한 무언가 물어뜯거나 씹고 싶은 욕구가 든다.

책 들고 다니기

'이동진의 독서법' 이라고 인터넷에 떠도는 글을 읽어보니 책을 들고다니면 책을 읽게 된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책을 읽었을 때는 내 손 닿기 좋은 곳에 책이 있었을 때였다.

일리가 있다 싶어 가방안에 책을 소지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휴식 시간에 책을 들고 나와 선선한 곳에 서있거나 걸으며 책을 조금씩 읽어본다. 잠깐의 시간이지만 휴가를 나온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책을 들고 다닐때의 느낌이 재미있는데, 이 가벼운 종이 뭉치 안에 누군가의 생각이나 이야깃 거리, 다시말해 지식이 덩어리째로 담겨 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오묘해진다. 백지 뭉치를 들고다니면 그것은 그냥 종이 뭉치일 뿐이지만 일정한 패턴으로 잉크가 찍혀있음으로 인해 그 종이 뭉치는 우리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도 상상을 기반으로 하는 경험.

클라우드 메모

무언가 떠오를때, 혹은 기억해야 할 때 메모를 한다.
google keep 앱을 사용하면 참 편한데, 클라우드 기능이 있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확인이 가능하다.

쉽게 말해 생각이 떠오르면 언제든지 허공에 착 하고 새로운 메모를 붙여놓고, 언제든지 그 메모를 확인할 수 있도록 그 메모들이 나를 쫓아다니는 것이다.

직관적이고 편리한, 아주 바람직한 어플리케이션이라 하겠다.

2017년 6월 14일 수요일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by 브로콜리 너마저



음악은 잘 모르지만 신나는 멜로디 사이사이 슬픈 음이 느껴진다.

단음이라고 하던가? 막연히 신나지만도 않고 우울하지만도 않다.
무엇보다 앨범커버가 귀엽다.

스트레스 - 다음 침공은 어디?

마이클무어의 '다음 침공은 어디?'

복지가 '잘' 되어 있는 국가들의 복지 서비스를 소개하며 각 국가의 철학을 소개한다.
이탈리아는 휴가가 많고, 어디는 교육이 다 무료고, 프랑스는 급식이 환상이고 등등을 소개하며 미국과 대비하는 프레임인데 새로운 시각을 알려주어 고마웠다.

우리나라는 천연 자원도 관광 자원도 없기 때문에 그들과 같아져야 한다고 주장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결국 다 돈에 관한 얘기이니까. 방법론에 대해 논의하기에는 식견이 짧으나 해당 국가들의 국민들이 했던 이야기 들이 가슴속에 깊이 남아있다.

그 중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스트레스에 대한 언급이었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며, 스트레스를 잘 해소해야만 즐겁게, 생산적으로 일 할 수 있고 무엇보다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 그들은 휴가, 마사지, 가족과의 식사, 여행 등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있었다. 우리는 얼마나 스트레스에 관심이 많았을까. 국가 개발과정에서 국민들은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술, 담배, 성매매로 해소해 온 남성들은 과연 행복했을까. 그러한 남성 곁에서 집안 살림을 꾸려야 했던 이 나라의 여성들은 도대체 어떻게 스트레스를 해소했던 것일까.

닭들은 비좁은 닭장 안에 가둬 놓으면 서로를 부리로 쪼아 상처를 낸다. 동물원의 곰은 매일같이 같은 자리를 빙빙 돈다. 이 나라의 아이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을 때리고 괴롭히고 울린다. 직장인들은 술과 담배로 몸을 절인다.

"스트레스가 제일 안 좋은 것 같아." 친구 중 하나가 말했다. 평소 말도 탈도 없이 매일 묵묵하게 곰처럼 일하던 친구가 얘기를 하니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미국 수정헌법 제13조

넷플릭스 오리지널
"미국 수정헌법 제 13조"

13조에는 미국 국민에 대한 정의가 있다.
그러나 조항 중 '범죄자를 제외한' 이라는 추가 항목이 있는데 이것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자들이 흑인들을 핍박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이라며 영화는 시작된다.

'흑인 남자는 백인 여성을 강간한다' 라는 사회적 프레임을 만들어 흑인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심는 사회. 그런 공포심으로 표심은 움직이고 사회는 형성된다. 실제로 백인 남성이 흑인 여성을 강간하는 수가 더 많음에도 위의 프레임은 효과적이었고, 흑인들 마저도 같은 흑인들을 두려워 하게 된다. 이 프레임으로 인해 흑인들은 길거리를 거닐기만 해도 백인들에게 걷어채이고 주먹세례를 맞는다. 놀랍게도 지금도 유색인종에 대한 물리적 폭력이 자행되고 있었다.

사회적 약자가 겪는 어려움, 인간의 공포심이 빚어내는 무지함, 그들이 겪는 일상의 고통 등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흑인들이 느끼는 고통을 백인들은 '절대로' 알지 못합니다"

교도소마저 산업화 되어 기업이 잠식하고, 정경유착으로 더 많은 흑인들을 잡아두려는, 더 오래 잡아두려는 법이 제정된다. 흑인 범죄자가 많은 이유는 그들이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그들을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렇기에 공부해야한다. 그저 막연하게 사랑과 평화와 평등을 외치는 것은 쉽지만 설득력이 부족하고 지속되기 어렵다. 힘들지만 노력없이 얻어지는 것이 없잖은가.

크리스토프 발츠 (Christoph Waltz)

나쁜녀석들의 크리스토프 발츠 (Christoph Waltz)
영화 바스터즈:거친 녀석들에서 구사하는 어휘가 너무나 아름답다.
4개 국어에 능통하여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역을 아름답게 소화한다.
이 영화는 크리스토프 발츠의 발화를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었다.

장고 보다는 바스터즈에서의 모습이 인상깊었다.

멜라니 로랑 (Mélanie Laurent)

바스터즈:거친 녀석들에 나오는 멜라니 로랑 (Mélanie Laurent) 


우아하고 아름답다
수수하면서도 빛이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조각품 같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이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미학에 대한 호기심이 치솟는다

죽음


할머니 상을 치르던 날. 공동묘지 부지에 수많은 무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걸려 있는 현수막에는 더 이상 공동묘지에 부지가 남지 않았으니 관리비를 내지 않은 묘의 경우 이장을 하겠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죽음이란 무엇이기에 인간들은 이리도 땅에 묻히려고 했을까. 이 또한 본인도 모르게 주어진 가치는 아니었을까.

한국사를 공부하면서 인상깊었던 점 중 하나가 장례 문화는 굉장히 보수적이라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만큼 인간이 죽음을 무겁게 인지한다는 뜻이다. 그러한 보수적 인식이 이렇게 많은 무덤을 양산해 냈고, 그 무덤의 규모가 할머니의 죽음을 보잘것 없게 느끼게 했다.

인간은 인지하고 행동하고 받아들이고 내뱉는다. 인간의 움직임, 말투, 행동이 그 인간을 형성한다. 그 움직임과 행동은 뇌가 결정한다. 뇌는 단백질 덩어리이며 여러 신경세포가 다발을 이루어 전기 신호를 주고 받는 기관이다. 우리가 새로운 것을 보고 맛보면 이 신경 다발이 새로운 자극을 주고, 우리의 뇌는 그에 맞춰 변한다. 그렇게 '경험' 이 쌓여 가는 것이다.

컴퓨터 전원을 내리면 컴퓨터의 연산활동이 하늘 나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도체에 전기가 흐르지 않는 자연 상태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구리, 플라스틱, 금 등의 물질로 구성된 물체 그 자체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죽으면 하늘 나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신경 다발에 전기 신호가 더 이상 흐르지 않는 것이다. 단백질 세포로 구성된, 전기 신호가 흐르던 뇌는 산소와 영양분 공급이 중단되어 그저 썩어가는 단백질 덩어리가 되는 것이다. 죽음이란 그저 그런 것이며 그만큼 허망하다.

죽으면 혼이 되어 하늘 나라로 올라가는 것도, 천국과 지옥의 세계로 빠지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근거는 없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근거도 없다. 다만 너무나 인간적인 발상이기에 인간의 상상으로 비롯되었음은 확고하게 주장할 수 있다.

우리의 죽음이 이렇게나 허망하기 때문에 현재의 삶에 너무나 많은 이유를 부여하며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

글을 쓴다는 것은 한글 자모를 조합하여 의미를 나타낸다는 뜻이다.

문자를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사람을 기쁘게도 슬프게도 해 줄 수 있다.

이만한 레고가 또 어딨으랴.

출세 명예 돈

명품을 걸치는 자

열심히 돈을 버는 자

열심히 본인을 꾸미는 자

열심히 사는 자

성공에 목마른 자

sns 를 하는 자

억지로 회식에 가는 자

그들은 누구일까

국가의 역할. 개인도 해줄 필요가 있을까?

예술가는 대개 배고프다. 배고픈 자는 일을 유지하기 힘들다. 그렇기에 예술가는 도움을 받아야 한다. 무형 문화재는 그러한 연유로 선정되는 것일 터이다. 만일 내가 돈이 있고 내가 사랑하는 주변인이 예술을 한다면 나 또한 그러한 이유로 지원해주는 것이 좋은 것일까? 내 자식이 아닌, 법적으로 묶여있는 관계가 아닌, 그저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실 가장 중요한) 타인을 위해 무제한 지원해 줄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동기는 무엇일까? 이는 얼마나 불완전한 지원일까?

원시시대에 태어났다면

예민한 오감, 튼튼한 몸, 그리고 뛰어난 야간 시야.

손재주마저 뛰어난 한 인간이 현대에 태어났다면 그는 공장 노동자일 수 있다.

원시시대에 태어났다면 사람을 여럿 거닐며 장동건 처럼 살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시대를 잘 타고 나야 한다는 말이 그래서 있나 보다.

학교라는 공간

학교라는 공간은 모두에게 추억이 되는 공간이다.

학교를 떠올리면 어린시절 좋아했던 이성, 지겨운 학교 수업, 방과 후 조용함, 교실의 떠들썩함.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기에 수많은 예술 작품들이 이를 활용한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때이므로 이만큼 좋은 소재도 없을 것이다.

공학을 한다는 것

공학을 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을 의미있다고 생각하고 달려드는것인가
돈되는 일을 찾아서 하는 일인가
우주의 진리를 확인하는 일인가
공학이 세상을 바꾼 경우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무엇으로 비롯되었을까
열심히 골똘히 머리를 싸매고 노력하는 그 일이 제사상에 사과가 왼쪽에 놓는지, 오른쪽에 놓는지 정도로 무의미한 일이라면 어떨까
인간에게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는 무엇일까. 의미는 무엇으로 부여되는가.

컴퓨터와 인생

컴퓨터는 자연의 힘을 사용하는 도구이다.

자연에 존재하는 전기의 속성, 도체와 부도체의 속성을 응용한 기계일 뿐이다.

물레방아가 물레를 돌리듯, 너무나 자연스러운 매커니즘을 따르는 것이다.


창조하고 공부하는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컴퓨터란 무엇인가

컴퓨터로 철학을 세우고, 생각을 옮기는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을까

컴퓨터를 다루는 일은 자연 그 자체를 분석하고 파악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인생 그 자체인가

세상의 무서움

먹고 살기위해서 얼마나 스트레스 받으며 살아야 할까.
이 세상은 정글일까. 경험해보면 좀 다를까.
사회는 끔찍할까. 원래 안 끔찍할 수 있는데 끔찍하게 분위기가 형성된 것일까.
아니면 끔찍할 수 밖에 없는 세상인 걸까.
사회가 힘들다는걸 알고 나면 현재 생활을 더 열심히 살까.
난 이보다 더 노력하며 스트레스 받으며 살고 싶지 않다.
난 이 사회에 살 수 없는 존재인걸까.

공과 사의 구분

비즈니스란 무엇일까?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의 경계는 무엇인가?

과연 경계는 있는가?

돈이 걸려있으면 사적인 부분은 무시하고 들어가는 것이 맞는가?

먹고 사는 문제는 삶의 기반이 되기 때문에, 삶의 기반이 흔들려서는 안될 것이다.

그 기준은 무엇일까?

2017년 6월 13일 화요일

인간은 예술로서 존재한다

알랭 드 보통의 책에서 읽은 것 같다. 예술은 인간 존재의 궁극적인 형태라고.
기억하기로는 그러하나 실제로 저렇게 언급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 말에 격공한다.
나의 존재를 표현하는 방법이 바로 예술인 것이다.
백지에 어떤 것을 그려낼지, 어떤 것을 적어낼지.
같은 내용을 적고 같은 것을 그려낼 수 없다.

다들 교육받은대로 잠자코 있는 것이 익숙하겠지만 그러지 말자.
표현하고 드러내자.

요리를 한다는 것

요리는 곧 삶이다.
내가 먹을 음식의 재료를 직접 고르고 이를 어떻게 먹을지 온전히 내가 결정한다.
재료가 신선한지 아닌지를 보는 과정은 원시시대 과육을 따는 모습과 흡사하다.
구울지 쪄낼지 끓일지는 어떠한 맛을 내가 원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과정에 따라 재료의 맛이 어떻게 변할지는 이미 정해져 있고, 어떤 과정을 진행할지 내가 결정한다.

각 식재료를 이해하는 과정은 놀랍고 즐겁다.
생닭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각 부분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어떻게 해체하는지를 이해하는 과정은 하나의 시스템을 파악하듯 즐겁다.
각 부위를 만지고 뜯고 잘라내고 토막내며 닭을 이해하고, 이를 먹으며 다시 한번 이해한다.

칼을 날카롭게 벼려내는 과정 또한 요리에 포함된다.
양쪽 날을 갈돌에 비벼내어 날이 날카로워지면, 재료를 썰 때마다 온 몸에 날카로움이 전해져 온다.
재료마다 내는 소리도 다르다. 사악 사악 척척척 슥슥슥 칼질을 하며 식재료를 온몸으로 느낀다. 썰려나가는 재료들은 각자 저만의 향기를 풍긴다.

내가 식재료를 얼마나 이해하느냐, 칼 사용법을 얼마나 숙지하느냐에 따라 나와 재료의 관계는 달라진다.
양파의 뿌리부분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양파는 순순히 조각나지만,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순간 나의 눈에 매운 눈물을 짜낸다.
감자가 익는 데 오래 걸린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음식 전체가 망가지기도 한다.

식재료들은 대개 생으로 먹을 수 있기에, 그 자체가 음식이라고 볼 수 있다.
요리라는 과정을 통해 먹을 수 없는 것을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변하게 하는 과정이 아니다.
이미 식재료가 음식으로서의 가능성을 한껏 내포하고 있으며, 요리는 이를 잘 조합해서 맛나고 힘나게 변형하는 과정이다.

식재료 중 일부는 그대로 먹어도 맛이 난다.
식재료에 불을 가하기만 해도 어지간히 먹을만 해 진다.
어울리는 맛끼리 조합을 하면 기초적인 음식이 된다.
불의 세기, 조리 시간, 재료의 배합을 고려해야 완전한 요리가 된다.
요리의 조합을 잘 구성해야 완전한 한 상이 된다.
몸과 마음을 완전히 채울수도, 반만 채울수도 있는 종합 예술인 셈이다.

나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행복하다.

2017년 6월 12일 월요일

막그림

비행기 좌석 
늙는다는 것 
억척스럽게 내린 뿌리 
흑형들의 재즈 나들이 
난 나야 
문화, 경제, 정치 등
이것저것 버무려진 지구촌 
80년대 양아치

자화상

가끔은 새침하고  
퉁퉁하며 
늘 생각하고

종종 빡친다

주제의식 있는 그림들

제목. 이쁘다
진정 이쁜 것이란 무엇일까 
제목. 오버워치 신캐릭터
죽창과 방패로 상대를 메다 꽂는 캐릭터

제목. 두려움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두려워 한다
그러나 실제로 마주하면 그보단 덜 하지 않을까 
제목. 어울림
악의 없는 동글동글한 사람들
각자의 개성을 품고 어우러져 사는 것이 세상일까

제목. 인간 군상
인간은 곧 머릿속의 뇌가 아닐까 싶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각자 본인만의 경험을 가지고
고유한 뇌를 품고 있다
그들은 각각이 빛난다 
제목. 위도우 메이커
굉장히 섹시했으면 했는데,
뭔가 삐죽삐죽한 느낌으로 그려졌다 
제목. 프리킥
프리킥이 이렇게 감겨 들어가면 어떨까?
이상적인 프리킥이란 이런 것일까?

제목. 쌍죽창 아기멀록
하스스톤 멀록 카드를 보다가 하나 구상해보았다

제목. 정크랫
가장 좋아했던 캐릭터
미치광이의 모습을 그려내고 싶었지만
똑똑하게 그려진 듯 
제목. 무거움
누군가는 몸이 단단하고
누군가는 머리가 똘똘하다
이것이 '무게' 로 표현 가능할까? 
제목. 그림 그리는 침착맨
침착맨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제목. 사고 (思考)
체제에 맞춰 경직되게 생각했고,
너를 만나 자유롭게 생각한다 
제목. 세타필
세타필 네가 나를 즐겁게 해
제목. 사고의 구성
주제의식이 흐린 미디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와
명확한 주제의식을 가진 글을 능동적으로 해석하는 자
그들의 뇌는 이토록 다르다

제목. 부드러움
썰전의 유시민을 보고
'나도 그처럼 (겉으로라도) 부드럽고 싶다' 라는 생각을 했다

제목. 마이클 잭슨
Thriller 뮤비를 보다가
마이클 잭슨의 다리를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