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17일 일요일

나의 고등학교 시절

매일같이 붙어다니던 친구들은 다 명문고에 진학했다. 나는 유일한 루저였다. 일반고에 진학을 했고, 거기엔 명문고에 떨어진 친구들이 모여 있던 특수반이 있었다.

그때 많이 행복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학교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학원을 덜 간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해준 것이 아닌가 싶다. 야자시간에 특수반 아이들과 함께 있어야 했던것이 너무 싫었다. 야자시간에 일반 친구들과 함께 있고 싶었다. 가끔 일반 친구들과 같이 야자를 할 때면 너무 즐거웠다. 야자시간에 열심히 공부하고 친구들과 바람 쐬는 시간이 행복했다.

학교에서는 별로 배우는게 없었다. 특수반에서 가르쳐줬던 내용들도 많이 들어오지 않았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에 갔고, 주말이나 방학이면 더 많은 학원을 다녔다. 명문대에 가야 했기 때문에 수학과 과학, 영어, 국어에 집중해서 학원을 다녔다. 고등학교 정도 되니 내가 살던 동네 안에는 좋은 학원이 없게 되었다. 더 큰 도시를 찾아가야 했다. 매일 1시간씩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학원에 갔고, 같은 시간을 들여 집에 돌아왔다. 집중을 하지 않아 배운것이 없으니 집에 와서 밤을 새 공부를 해야했고, 실제로는 밤만 샜다. 계속 잠이 부족했고 배운것이 없었던 생각이 난다. 힘들고 피곤하니 집중이 될 리가 없었다. 애초에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았다.

그러나 학원에서 유일하게 명문고에 가지 못했던 것은 나에게 큰 컴플렉스였다. 어떻게든 명문대에 가서 그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열심히 내신을 챙겼다. 내신 공부는 정말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 내신은 기본이고 어떻게든 경시대회 수상을 해야 명문대에 갈 수 있었다. 수상 실적을 위해 수학 학원은 열심히 다녔으나 너무 어려워 이해가 잘 되지 않았고, 그래도 듣다보면 하나라도 배우겠지 싶어서 계속 앉아있었다. 앉아있었지만 집중은 하지 않았다.

어느 날 학원에서 중요하다고 가르쳐 준 내용이 있었다. 이건 꼭 알아야 한다길래 그 시간에 딱 집중해서 배웠던 기억이 난다.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대충 느낌만 알아뒀다. 다음 경시대회에 그 문제가 나왔다. 느낌만 알았기에 풀다 말았다. 나는 상을 받았다. 상당히 권위있는 상이었다.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가했을 정도니까. 나중에 알고보니 그 학원이 문제 유출로 유명한 학원이었다.

받은 상과 내신을 가지고 명문대학에 서류를 넣었다. 대학교 입학시스템을 확인해보니 내신은 사실 거의 의미가 없었다. 수상이 정말 중요했다 (추후 대학교에서 입학시스템 근로를 했었는데 정말 그랬다. 상으로 학생들을 1차로 분류했었다.). 수상 실적이 워낙 좋으니 넣은 학교에서 모두 서류합격을 줬다. 남은건 면접이었다.

A 대학교는 문제를 보고 교수들 앞에서 문제를 풀고 설명하는 시스템이었다. 나는 기출 문제를 보고 달달달 분석했다. 교수들 앞에서 문제를 풀어야 하기 때문에 집에 화이트 보드를 하나 걸어두고 계속 연습을 했다. 기출문제에서 풀지 못했던 문제들을 분석해보니 과거 학원에서 가르쳤으나 내가 공부하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열심히 공부했다. 물리 면접이었기 때문에 물리 공부를 열심히 했다. 예전에 배웠기 때문에 당연히 알아야 했지만 나는 몰랐다. 면접 직전순간까지 계속 문제집을 보고 공부했었다. 아마 학원을 다녔던 모든 시간보다 그 때 공부를 더 많이 했던것 같다. 한달동안 스스로 공부했던 내용이 2년간 다녔던 학원보다 더 많았다. 면접 문제는 예상대로 나왔고 문제없이 면접을 치뤘다. 합격이었다.

B 대학교는 개인연구와 자유토론을 심사 기준으로 두었다. A 대학교에서 합격이 된 상태라 부담이 없었다. 간단한 물리 이론을 기반으로 연구를 생각했다. '속삭이는 회랑' 이라는 공간에 대한 내용을 잡지에서 읽은 기억이 있어 그것을 기반으로 실험을 했다. 타원형 건물 내에서 한 정점에서 속삭이면 다른 정점에서 뚜렷이 잘 들린다는 내용이었다. 타원형 수조를 만들고 드릴로 진동을 만들고 수심을 바꾸고 진동수를 바꾸고 소리와 물로 현상을 측정해냈다. 정해진 답이 있었기에 거기에 맞춰 결과를 분석하면 되었다. 너무 간단했고 그저 하면 되는 일이었다. 내가 생각해 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그건 연구가 아니었다. 그저 과학실습이었다. 그러나 그럴싸하게 포장하고나니 교수님들이 좋아들 하셨다. 토론의 경우 조급해 보이지 않도록 가만히 앉아 있다가 나에게 발언권이 있을 때 소신있게 답하는 형식으로 간단히 치뤘다. B 대학교에서도 합격 통지가 날아왔다.

학창시절 내내 마음도 비어있었고 머리도 비어있었다. 몸은 지쳐있었고 의욕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대입 시스템에 맞춰 스펙을 만들고 거기에 맞춰 준비하니 합격할 수 있었다. 대입 시스템이 굉장히 잘못되었다는 것이 곧 나의 대학생활을 통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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